[논어]에서는 40세를 세상 일에 미혹되지 아니하고 사물의 이치를 터득하며 세상 일에 흔들리지 않을 나이라 하여 불혹(不惑)이라 하고, 50세를 천명을 아는 나이라 해서 지명(知命) 혹은 지천명(知天命)이라고 하며, 60세를 인생에 경륜이 쌓이고 사려(思慮)와 판단(判斷)이 성숙하여 남의 말을 받아들이는 나이라 하여 이순(耳順) 이라고 했다.
시편 75편을 기록한 아삽은 성전에서 찬양을 하는 사람이다. 일생 동안 하나님의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기던 아삽은 “오만한 자들에게 오만하게 행하지 말라”(시 75:4)고 경고한다. ‘오만’은 ‘높이다, 미친척 행동하다, 빛나다, 어리석다, 자랑으로 여기다’라는 뜻을 가진 히브리어 ‘할랄’을 번역한 말이다.
공자는 사람이 50세가 되면 하늘의 뜻을 알아야 하고 60세가 되면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일 줄도 알아야 한다고 했다. 그 만큼 살아봤으면 인간의 약함과 한계를 인정하고 하늘의 뜻고 알고 다른 사람의 말에도 귀를 기울일 줄 알아야 인간이라는 말일게다. 50이나 60이 되어야 이런 이치를 깨달을 수 있을까? 아니 60이 훨씬 넘었어도 여전히 남의 말을 무시하고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오만방자하게 세상에서 영원히 살 것 처럼 사는 사람이 어디 한 둘인가! 그런가하면약관(弱冠)의 나이라 해서 이런 이치를 깨달은 사람이 어디 없단 말인가?
성경은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 16:18)고 말하고 있다. 나이를 한 살 더 먹었다. 좀 더 겸손하고 좀 더 신중하고 좀 더 규모있고 좀 더 단정하게 행동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출처: http://antlema.tistory.com/657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
댓글0개